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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종중회 소개

파종중회 소개

전서공파

휘 원리(元理)

예부상서 휘 한공의 장자로 보익대부전공판서 또한 이르기를 호조전서 라고도 한다. 옛 보첩을 살펴보면 고려 말 국운이 쇠퇴함를 당함에 오직 일념으로 나라의 폐단을 고치고 구제하고자 하나 몸의 노쇠로 충성을 다하지 못하니 송구한 마음으로 벼슬을 사양하고 조정에 나아가지 못함에 임금은 그 뜻을 아름답게 여겨 화공으로 하여금 그 상을 그려 자손에게 주었으나 당시 전란 등으로 분실되었음을 충주 유천포 읍지에 등재되어 있다. 묘소는 상주 영순면 괴피동(현재 문경시 영순면 말응리) 천마산 대록 묘좌에 삼가 받들어 뫼시었으며 선조조 기축년(1589년) 겨울 외후손 윤선각상 주목사로도 임한뒤 성묘할시 표석이 없음을 보시고 자손 등 모두가 영원토록 볼 수 있는 비갈을 세워야 할 것을 후손으로 하여금 그 일을 맡아 하게 하니 드디어 완수하였다.

 

지난 을해년(1995년) 8월부터 시작하며 8년간에 오랜 세월로 무너진 묘소 내외를 새롭게 하니 즉 묘소앞 계간석축과 산소전역에 대량가토와 사초 및 의례적인 석물을 모두 갖추고 대형비석을 세웠으며 재사숭모재의 전후기둥 및 옥상에 토기와로 교체 문옥 등 대보수 및 수호가옥 이십평과 부속건물을 중건하고 진입로를 포장한바 여사한 일들은 파조이하 삼대분의 위선사업을 계획한 바에 따라 첨종회의로 결정 그 비용을 후손부담과 헌성금으로 완수한 결과이다.

 

묘사는 매년 음력 10월 초하루이나 시대의 변천으로 많은 후손들의 소원하는 바가 묘사에 많은 자손이 참가 할 수 있는 공휴일을 소원함으로 상당기간 검토 의견 수렴하여 통례에 따라 양력 4월 5일로 변경하고 신사년(2001년)부터 묘사를 행사하였다.

 

군부인 밀양 손씨로 묘소는 합폄이시다.​

 

 

 

전서공사(典書公派) 파조(波祖)의 단소 및 재실 



전서공사(典書公派) 파조(波祖)의 행적(行蹟)

▪ 파    조 : 휘(諱) 원리(元理)

▪ 생    몰 : 미상(未詳)

▪ 가    계 : 상서(尙書) 한(憪)의 장자 

▪ 관    직 : 호조전서(戶曹典書) 공조판서(工曹判書)

▪ 과    거 : ·

▪ 군    호 : · 

▪ 시    호 : ·

▪ 주요행적 :  

 예부상서(禮部尙書)를 지낸 휘(諱) 한공(憪公)의 아들이며, 봉익대부(奉翊大夫) 전공판서(典工判書)와 호조전서(戶曹典書)를 지냈다. 典書公派(전서공파)의 派祖(파조)로서 고려의 運命(운명)이 衰亡(쇠망)함을 目擊(목격)한 公(공)은 난세(亂世)를 극복(克服)할 슬기와 역량(力量)을 기울이고자 하였으나, 때가 아님을 판단하고 나이가 많음을 자숙(自肅)하여 벼슬을 사양(辭讓)하고 두문(杜門) 독서(讀書)로 날을 보내며 조정(朝庭)에 나아가지 않았다. 후일(後日) 왕(王)이 공(公)의 높은 뜻을 가상(嘉尙)이 여겨 화공(畫工)으로 하여금 형상(刑象)을 그리게 하여 후인(後人)들의 귀감(龜鑑)이 되도록 하였다.

 

그러나 당시 戰亂(전란) 등으로 분실(分失)되었음을 충주 유천포(酉川浦) 읍지(邑誌)에 기록(記錄)되어 전해오고 있다. 

묘소(墓所)는 문경시 영순면 말응리 천마산 대록(大麓) 묘좌(卯坐)에 모시었는데 선조 기축년(己丑年)(1589년) 겨울 외손(外孫) 윤선각(尹先覺)이 상주 목사(牧使)로 부임(赴任)하여 성묘(省墓)시 표석(標石)이 없음을 보고 비(碑)를 세웠다.

 

그 후 세월이 지나면서 허물어진 묘(墓)와 재실(齋室)을 후손들의 정성으로 을해년(乙亥年)(1995년) 8월에 새롭게 묘역(墓域)을 조성하였다. 8년간의 세월 동안 무너진 묘소(墓所) 주변을 새롭게 정비하여 계단식 석축(石築)을 쌓고, 산소 주변에는 흙을 대량으로 더해 보강하고 석물(石物)을 보완하였다. 또한, 재사(齋舍)의 계단과 지붕의 토기와를 개·보수 하였다.부속 건물을 중건하여 의례 진행에 어려움이 없도록 보완하고, 진입도로를 포장하여 대소사 행사시 불편을 최소화 하는데 심혈(心血)을 기우렸다. 

 

묘사(墓祀)는 매년 음력 10월 초하루로 위정 하였으나 다수의 후손들이 원하는바 상당기간 검토·의견을 수렴하여 통례에 따라 양력 4월 5일로 변경하여 신사년(辛巳年)(2001년)부터 춘향제(春享祭)로 행하고 있다.

군부인(郡夫人) 배위(配位)는 밀양손씨(密陽孫氏)로 합폄(合窆)하였다.


전서공파

휘 원리(元理)

예부상서 휘 한공의 장자로 보익대부전공판서 또한 이르기를 호조전서 라고도 한다. 옛 보첩을 살펴보면 고려 말 국운이 쇠퇴함를 당함에 오직 일념으로 나라의 폐단을 고치고 구제하고자 하나 몸의 노쇠로 충성을 다하지 못하니 송구한 마음으로 벼슬을 사양하고 조정에 나아가지 못함에 임금은 그 뜻을 아름답게 여겨 화공으로 하여금 그 상을 그려 자손에게 주었으나 당시 전란 등으로 분실되었음을 충주 유천포 읍지에 등재되어 있다. 묘소는 상주 영순면 괴피동(현재 문경시 영순면 말응리) 천마산 대록 묘좌에 삼가 받들어 뫼시었으며 선조조 기축년(1589년) 겨울 외후손 윤선각상 주목사로도 임한뒤 성묘할시 표석이 없음을 보시고 자손 등 모두가 영원토록 볼 수 있는 비갈을 세워야 할 것을 후손으로 하여금 그 일을 맡아 하게 하니 드디어 완수하였다.

 

지난 을해년(1995년) 8월부터 시작하며 8년간에 오랜 세월로 무너진 묘소 내외를 새롭게 하니 즉 묘소앞 계간석축과 산소전역에 대량가토와 사초 및 의례적인 석물을 모두 갖추고 대형비석을 세웠으며 재사숭모재의 전후기둥 및 옥상에 토기와로 교체 문옥 등 대보수 및 수호가옥 이십평과 부속건물을 중건하고 진입로를 포장한바 여사한 일들은 파조이하 삼대분의 위선사업을 계획한 바에 따라 첨종회의로 결정 그 비용을 후손부담과 헌성금으로 완수한 결과이다.

 

묘사는 매년 음력 10월 초하루이나 시대의 변천으로 많은 후손들의 소원하는 바가 묘사에 많은 자손이 참가 할 수 있는 공휴일을 소원함으로 상당기간 검토 의견 수렴하여 통례에 따라 양력 4월 5일로 변경하고 신사년(2001년)부터 묘사를 행사하였다.

 

군부인 밀양 손씨로 묘소는 합폄이시다.​

 

 

 

전서공사(典書公派) 파조(波祖)의 단소 및 재실 



전서공사(典書公派) 파조(波祖)의 행적(行蹟)

▪ 파    조 : 휘(諱) 원리(元理)

▪ 생    몰 : 미상(未詳)

▪ 가    계 : 상서(尙書) 한(憪)의 장자 

▪ 관    직 : 호조전서(戶曹典書) 공조판서(工曹判書)

▪ 과    거 : ·

▪ 군    호 : · 

▪ 시    호 : ·

▪ 주요행적 :  

 예부상서(禮部尙書)를 지낸 휘(諱) 한공(憪公)의 아들이며, 봉익대부(奉翊大夫) 전공판서(典工判書)와 호조전서(戶曹典書)를 지냈다. 典書公派(전서공파)의 派祖(파조)로서 고려의 運命(운명)이 衰亡(쇠망)함을 目擊(목격)한 公(공)은 난세(亂世)를 극복(克服)할 슬기와 역량(力量)을 기울이고자 하였으나, 때가 아님을 판단하고 나이가 많음을 자숙(自肅)하여 벼슬을 사양(辭讓)하고 두문(杜門) 독서(讀書)로 날을 보내며 조정(朝庭)에 나아가지 않았다. 후일(後日) 왕(王)이 공(公)의 높은 뜻을 가상(嘉尙)이 여겨 화공(畫工)으로 하여금 형상(刑象)을 그리게 하여 후인(後人)들의 귀감(龜鑑)이 되도록 하였다.

 

그러나 당시 戰亂(전란) 등으로 분실(分失)되었음을 충주 유천포(酉川浦) 읍지(邑誌)에 기록(記錄)되어 전해오고 있다. 

묘소(墓所)는 문경시 영순면 말응리 천마산 대록(大麓) 묘좌(卯坐)에 모시었는데 선조 기축년(己丑年)(1589년) 겨울 외손(外孫) 윤선각(尹先覺)이 상주 목사(牧使)로 부임(赴任)하여 성묘(省墓)시 표석(標石)이 없음을 보고 비(碑)를 세웠다.

 

그 후 세월이 지나면서 허물어진 묘(墓)와 재실(齋室)을 후손들의 정성으로 을해년(乙亥年)(1995년) 8월에 새롭게 묘역(墓域)을 조성하였다. 8년간의 세월 동안 무너진 묘소(墓所) 주변을 새롭게 정비하여 계단식 석축(石築)을 쌓고, 산소 주변에는 흙을 대량으로 더해 보강하고 석물(石物)을 보완하였다. 또한, 재사(齋舍)의 계단과 지붕의 토기와를 개·보수 하였다.부속 건물을 중건하여 의례 진행에 어려움이 없도록 보완하고, 진입도로를 포장하여 대소사 행사시 불편을 최소화 하는데 심혈(心血)을 기우렸다. 

 

묘사(墓祀)는 매년 음력 10월 초하루로 위정 하였으나 다수의 후손들이 원하는바 상당기간 검토·의견을 수렴하여 통례에 따라 양력 4월 5일로 변경하여 신사년(辛巳年)(2001년)부터 춘향제(春享祭)로 행하고 있다.

군부인(郡夫人) 배위(配位)는 밀양손씨(密陽孫氏)로 합폄(合窆)하였다.